【 복음 묵상 】3월 25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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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루가 4,24ㄴ-30

[나자렛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24ㄴ-30)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대형 교통사고를 겪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자신의 두 발로 병실을 나서기까지 1년이란 세월이 걸렸고, 그간 겪었던 고통은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되 할수록 자매님에게 일어난 일은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구겨진 차 속에서 목숨을 건졌고, 다들 가망이 없다고들 했었는데...자신의 두발로 퇴원을 하다니...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누군가가, 아니면 어떤 큰 힘이 자신을 늘 떠받치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기쁜 일은 몸의 회복과 동시에 마음도 완벽히 회복된 것입니다. 자매님은 한마디로 개과천선하게 되었습니다. 참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자매님 얼굴만 바라만 봐도 그분의 신앙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잘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고로 인한 회심 이후의 자매님은 가까운 사람들 특히 남편과 자녀들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앞길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사람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흔적을 느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또한 매일 처리해야할 사소하고도 잡다한 집안 일 조차 하느님과 연결시켰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긍정적이고도 낙관적인 삶의 자세"였습니다.

매사에 불평불만이고 매사에 소극적이었던 아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다보니 처음에 남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혹시라도 이러다 아내가 갑자기?"하는 걱정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자매님은 전과는 달리 이유 없이 다가오는 십자가나 난데없이 닥치는 병치레, 우울한 마음, 작은 실패, 좌절, 실망들조차도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내가 변하니 남편도 덩달아 변화되었습니다. 남편이 변화되니 자식들도 신명이 났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과 너무도 가까이 살았기에 자신들 사이에 이미 와 계셨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때로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자주 우리 가까이 와 계신다든지 바로 우리 옆을 지나가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을 열지 못하기에, 우리의 눈이 순수하지 못하기에 그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 우리에게 필요한 일 한 가지는 우리 삶 가장 가까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 얼굴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배우자의 삶 안에 계시는 하느님, 시어머니, 며느리, 직장 동료, 친구들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체취를 느끼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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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상대로 하신 말씀에 모두가 화가 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회당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있었을 것 같습니다.
율법학자
사두가이
바리사이
먹고 살만한 평범한 평민
가난한 서민
천민 (???)

그런데 왜 모두가 화가 났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민이라는 일종의 쇄뇌교육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두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설사 예수님 말씀에 공감을 했더라도
군중심리,
그리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집단 따돌림에 대한 염려 때문에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저라고 달리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저의 입장에서 바라 볼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장에서 저에게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를 생각하며
항상 열림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 하루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선입관념이 앞서 눈이 가려진 경우가 없는지 살펴보아야겠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