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26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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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 마태오18,21-35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 18,21-¬35)

<용서가 죽기보다 힘겨울 때>

죽었으면 죽었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다른 것은 다 하겠다. 그러나 그 인간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자고 ,용서하자고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다짐해도 그때뿐이다. 그 인간 얼굴만 떠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혈압이 오르면서 살인하는 사람들 마음 이해가 간다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마음 정녕 이해가 갑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쳐놓은 사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해친 사람, 단란한 가정을 망쳐놓은 사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사람, 견딜 수 없는 모욕을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진정 어려운 일입니다.

입으로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용서는 우리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결국 진정한 용서는 신앙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해결이 가능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지한 숙고 그 위에 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바처럼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 존재는 용서여부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셀 수도 없이 많은 용서를 받아온 우리들입니다. 그 많은 죄악, 진홍빛같이 붉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자비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향해 그러하셨듯이 우리 역시 끊임없이, 무조건적으로, 무한히 용서하는 일입니다.

용서가 정말 힘겨운 날,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셨던 자비를 생각해보십시오. 용서가 죽기보다 힘겨울 때, 지금까지 이어져온 하느님 자비의 날들을 기억하십시오.

결국 우리 인생은 하느님 자비로 인한 은총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분의 용서로 인한 축복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 내적평화도 있습니다. 영적인 삶도 있습니다. 기도다운 기도도 있습니다. 의미 있는 신앙생활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다시 한 번 진정으로 용서하고자 노력하는 하루, 훌훌 털고 홀가분하게 하느님 앞에 다시 서는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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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잊으려해도..

나의 가슴을 찢어 놓았던 사람을 용서하다니요?
용서는 못해도 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또한 무척이나 힘이 들지요.
용서는 기도속에서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할때
비로서 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주님!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나의 복음 묵상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무수히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제 자신을 할퀴는 줄도 모르고 할퀴면서 살았습니다.
한 동안을 가슴에 미 모든 상처를 품고 살았습니다.
갈수록 감당하기가 힘겨워졌습니다.

어느날부터 주님께 털어 놓기시작했습니다.
털어 놓는 순간,
모든 것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평화...!!!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용서해주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밑바닥 깊숙히 가라앉아 있는 엉어리를 찾아내기라도 하면
괜히 끌어 올렸나 후회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계속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너무 늦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읽었던 글을 생각해 봅니다.
"용서는 죽기 전에 해야 합니다.
죽고 나서 용서하면 너무 늦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 하루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
나 자신에 대한 용서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