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18일 성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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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성주간 화요일 - 요한 13,21-33.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21-33.36-38)


<여러분의 고통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이웃들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어디 부러지고 곪고, 상하는 등, 외적으로 드러나는 질병이 훨씬 더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외적인 병고야 우선 괴롭겠지만 시간과 더불어 아물어가지 않습니까? 적어도 세월과 함께 치유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지요. 잘만 견뎌낸다면 극복이 가능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외적, 육체적인 고통이야 대체로 한시적인 것입니다. 면역성도 생겨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습니다. 시간과 더불어 상처가 아물어갑니다.

그러나 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은 그야말로 심연의 고통입니다. 정녕 끔찍한 고통입니다.

그 누구도 인간 영혼의 저변에 흐르는 내적 투쟁과 번뇌를 제대로 그려낼 수 없습니다. 버림받음, 배은망덕, 오해, 비방, 무관심...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누가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끔찍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단의 두 핵심 제자였던 베드로와 유다의 배반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결정적인 수난의 시간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어찌 보면 십자가형보다 더 고통스러운 마음의 고통을 겪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서서히 목전으로 다가오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너무나 괴로웠던 나머지 제자들을 향해 기도해달라고 청했지만, 그들은 쿨쿨 잠만 잤습니다.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를 기다렸지만, 두 핵심 제자들은 오히려 배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죽음의 잔을 앞에 두고 피땀까지 흘려가며 괴로워하던 순간, 온 세상은 잠들어 침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 이전에 이미 겪으셨던 죽음과도 같은 정신적 고통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의 고통을 바라봅니다.

너무도 처참한 예수님의 고통, 더 이상 비참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보니 우리의 고통은 정녕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군요.

결국 인류역사상 가장 큰 고통을 겪으셨던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의 고통이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분의 고통으로 인해 우리의 고통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가치를 지니기 시작합니다.

오늘 고통을 겪고 계시는 형제자매님들, 부디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절대로 무용지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고통을 미워하지도 저주하지도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의 고통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윤택하게 하고 거룩하게 해주는 가장 고마운 은인들입니다.

지금 고통 받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힘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자녀나 번민하는 자녀를 더 아끼시고 섬세하게 보살펴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울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계시며,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를 건네주실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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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사탄이라고 불리는 '유혹'이 문제입니다.

지금의 편한 일, 그리고 지금의 세속적 이익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길에 함께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바로 주님을 팔아 넘길 유다이고,
제가 바로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정할 베드로입니다.
남을 흉볼 때가 아닙니다.

주님께로 주파수를 맞추고... 사탄이 넘보지 못하게 해야겠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 하루 주님께서 유다에게 베풀었던 그 마지막 순간의 사랑을
나에게는 어떻게 주고 계신지를 느낄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겠다.

안셀모